아이들에게 책읽기와 생각하기를 가르쳐주는 최고의 입문서
교재는 부족하였지만 교육에 열성을 다했던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에 사람들은 어떻게 책읽기를 배웠을까?
<생각을 만드는 책>(원제;(ABC-Buch))은 아이들에게 책읽기와 생각하기를 가르쳐주는 최고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고전으로, 18세기에 씌어진 글이지만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꾸준히 새롭게 재해석되며 출간되고 있다. 1790년 첫 출간된 모리츠의 책은 A부터 Z까지 26개의 단계를 거치며 대상에 대한 명료한 자기인식과 보편타당한 인간의 윤리나 행동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철학가이자 작가이기도 한 모리츠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관찰의 기쁨과 감각 경험에 대한 감탄, 그리고 인간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또한 모리츠의 책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읽기 쉬운 단순한 문장으로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교훈이나 피상적인 지식을 전해주는 어린이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모리츠는 읽기 쉬운 단순한 문장으로 생각하기의 근본에 대해 알려주면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분명하고 간단하게 그려낸다. 그는 촉각, 후각, 정신, 육체 등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또한 그 내용은 점차 심화되어 시간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아우른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모리츠는 섬세하고 체계적인 사고능력을 통해 기술하는데, 어린이들은 책읽기를 통해 바로 그런 모리츠의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어 ‘생각하기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2003년 구텐베르크 상 수상― 작지만 아름다운 책
18세기의 철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모리츠와 20세기의 화가 에를브루흐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세기를 초월하여 함께 고민하며 완성해 낸<생각을 만드는 책>은 다루는 대상이 분명하다. 책의 처음은 인간의 오감을 다루며, 뒤이어 생각하기와 육체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에 대해서, 혹은 자연 속의 사람과 집에서 사는 문명화된 사람, 사치품과 소박함 등 대립되는 소재 등을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화자에 국한되어 있던 시선이 모든?사람?으로 넓혀진다.
그림을 보는 관찰자는 그려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사회로 넓혀지는 시선을 느끼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특히 도덕에 관한 것, 즉 겸손함과 소박함이 하나의 덕이라는 것, 혹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진실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서 어린이 독자는 삶의 포괄적인 의미를 깨달으며, 지식과 의식, 그리고 예의범절 등을 넓힐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오감을 지닌 인간의 (구조에 관한) 박물관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볼프 에를브루흐는 구조적으로 형성된 이 책의 텍스트에 들어맞는 그림을 창작했다. 이는 18세기 첫 출간 당시의 헤터 하스의 동판화가 표현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면 그의 그림이 주는 묘미를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찬찬히 글과 함께 음미하면 글과 조화되어 드러나는 그림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 그의 그림은 낯설면서도 친근하며 순수하다. 사물과 인간의 모습을 자신만의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해낸 그의 그림은 모리츠의 텍스트와 잘 어우러져 여러 가지 추상적인 문제들을 알기 쉽게 드러낸다.
에를브루흐는 모눈종이에서 압지, 카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이를 사용하는 등, 기존의 다른 그림들과 대비되는 방법으로 낯설지만 새로운 사색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그의 작업을 통해<생각을 만드는 책>은 2003년 구텐베르크 상을 수상하게 된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칼 필립 모리츠
학교 교사이자 작가, 철학자, 저널리스트였다.
성서 강독 시간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목사가 그에게 장학금을 제의하였고, 그는 1771년부터 하노버의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1782년 영국 여행을 마친 그는 처음으로 문학적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786년에 돌연 교직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로부터 2년 후 독일로 돌아와 얼마동안 바이마르의 괴테 집에서 지냈다. 그리고 칼 아우구스트 공의 소개로 베를린의 예술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고, 1790년에는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소설 <안톤 라이저>의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3년 후에 프로이센 제국의 추밀 고문관으로 추대되기 직전에 결핵의 후유증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마감하였다.
볼프 에를브루흐
1967년부터 에센에 있는 폴크방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1983년 처음으로 그림책에 삽화를 그려 발표하였다. 오랫동안 광고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롸 활동하면서 「에스콰이어」, 「트랜스아틀란틱」 과 같은 잡지에 그림을 그렸다. 1990년 듀셸도르프 전문대학 교수를 지냈고, 1998년부터 부퍼탈 전문대예술대 교수를 거쳐, 현재 부퍼탈에 있는 베르기슈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개가 무서워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아빠가 되고 싶어요> 등의 작품에 그림을 그렸다. <숫자가 마법에 걸렸어요>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 국제상을, <아빠가 되고 싶어요>로 그림책 부분 독일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 미디어리뷰
책은 왜 읽어야 하나요?
‘생각을 만드는 책’(칼 필립 모리츠 지음·볼프 에를브루흐 그림·박원영 옮김)은 아이들을 위한 철학 입문서다. 모리츠는 자전적 심리소설인 ‘안톤라이저’ 등으로 하이네와 쇼펜하워 등 많은 독일계 작가·철학자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18세기 계몽철학가이자 작가.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은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책읽기’와 ‘생각하기’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썼다. ‘생각을 만드는 책’의 전개과정은 여타 철학 입문서와는 다르다.
모리츠는 용어와 개념 정리에서 시작하지 않고 알파벳을 매개로 시각 촉각 후각 육체 등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의 기능부터 설명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눈을 뜨고 책을 본다. 이는 “책을 읽는 아이들은 똑똑해지기 때문”이다. 눈은 똑똑해지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똑똑해지는 데 왜 코는 필요할까. 모리츠는 아름다운 빛깔의 꽃 한 송이를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꽃의 전부가 아니다. 꽃에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좋은 향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의 전체를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며 판단하기 위해서는 오감이 필요하다. 자 그렇다면 머리는 왜 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생각하는 것만큼 먹고 사는 데 귀찮은 게 없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인간은 언제나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동한다”는 평범한 명제를 언급한다. 사과를 따 먹는 것은 ‘저 사과가 먹고 싶어!’란 생각을 거친 후에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모리츠의 이 텍스트가 철학자들의 감탄은 물론 여러 화가들에 의해 재해석되는 것은 이러한 경험심리학적 사유방식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오감을 다루고 생각하기와 육체에 대해 설명한 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 자체에만 담겨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야생동물과 가축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혹은 그 생태계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인간답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춥기 때문에 옷을 만들었고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더불어 산다. 하지만 넘쳐나는 음식과 옷은 필요 이상의 사치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낮이 지나고 밤이 오는 것처럼, 깨어 있다가 다시 잠드는 것처럼, 일을 한 뒤에 쉬는 것처럼 우리는 살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소중하고, 시간을 값지게 생각하고 아껴 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따뜻한 마음은 계속 남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왜 책을 읽고 생각해야 할까. 책읽는 것은 귀찮다. 하지만 정말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생각이고 생각은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 그러기에 ‘장미를 갖기 위해서는 장미의 가시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일종의 가시인 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에를브루흐가 모리츠의 글에 담긴 사물과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모눈종이와 압지, 카드 등을 통해 형성해낸 이 책은 2003년 독일 구텐베르크 상을 수상했다.
세계일보
송민섭기자
2004.03.22
‘생각하기의 즐거움’ 보여주는 철학그림책
첫 장을 넘겼을 땐 ‘ABCD…’ 알파벳을 익히게 하는 그림책인 줄 알았다. 서너 장을 넘겼을 땐 눈·코·귀·혀 등 감각기관을 소개하는 책인가보다 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심오하고, 그래서 어렵다고들 하는 바로 그 ‘철학’에 관한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그림책이라는 걸!
처음 ‘별 것 아닌 책’으로 오해했던 이유는 순전히 짧고 단순한 문장들 때문이었다. 알파벳 A와 초승달 모양의 눈을 그려놓고는 ‘우리는 눈으로 그림을 바라봅니다’ 하더니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그림만 보겠지요?’ 하고 뜬금없이 묻는다. 교회의 파이프오르간 한 대를 그려놓고는 또 이렇게 적었다. ‘오르간은 제 스스로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노래도 하고 말도 하지요.” 이 책이 단순한 지식 그림책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되는 시점은 알파벳 ‘G’의 타이틀로 들어서면서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좋은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라는 문구 밑에 ‘좋은:Good’을 적어놓은 이 페이지에서 저자는 ‘생각하기’의 중요성을 넌지시 언급한다. 생각은 눈으로, 귀로, 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머리로 한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책을 빼앗아 갈 순 있어도 내 생각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뒷장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생각의 갈래와 폭이 조금씩 확대된다. 이슬과 빗방울을 먹고 사는 들판의 풀, 풀을 뜯어먹는 야생동물들, 동물의 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다시 야생동물에 반하는 집동물로 옮아갔다가, 왜 사람이 자연에서 벌거벗은 채 살지 않고 집을 짓고 옷을 입고 가축을 기르며 살게 되는지로 넘어간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자는 묻는다. 기본 의식주를 갖추는 것만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걸까. 황금잔에 담긴 와인을 든 부자와 목마른 나그네가 찾아낸 시원한 샘물 중 무엇이 더 값지고 맛있을까. 죽음은 단지 심장의 멈춤을 의미하는 걸까.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내놓고 또 독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매듭짓는다. ‘열심히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값진 일이다.’ 저자 모리츠는 10대 때부터 탈선과 방황, 좌절을 겪으며 자아와의 긴 싸움을 했던 소설가이며 철학자였다. 그래선지 ‘많이 생각하라’는 그의 충고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로 유명한 독일의 그림작가 볼프 에를브루흐의 재기 발랄한 일러스트레이션도 압권이다. 1790년에 출간된 ‘구닥다리’ 고전에 ‘2003 구텐베르크상’을 안겨준 것은 모눈종이에 ‘아무렇게나’ 그리고 찢어붙인 에를브루흐의 상상력 넘치는 그림 덕분이었다.
조선일보
김윤덕기자
200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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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칼 필립 모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