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용택이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는 시들'이라는 이 시들은 저자가 『중앙일보』'시가있는 아침'이란 코너에 두 달간 연재를 했던 글들을 묶어 정리한 것이다. 각 시마다 시인만의 독특한 서평이 어우러진 책으로 저자는 외국시 한 편(파블로 네루다의「詩」)과, 우리나라 근대 서정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이용악에서부터 박용래와 김수영, 서정주와 고은을 거쳐 장석남·유하에 이르기까지 근 1세기 동안의 한국 시사를 가로지르는 우리 시인들의 시 마흔여덟 편을 수록하고 있다.
시를 선택함에 있어 어떤 편견이나 특별한 잣대는 없지만 민중의 정서가 살갑게 살아 숨쉬는 서정적인 시편들이 책의 주된 흐름으로 시에 대한 경외심과 시인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보이는 시인은 시의 본질이 감동과 울림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시인이 혼자서 시를 공부하던 시절의 내밀한 고백들이 정겹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가노라면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의 정신과 삶 속으로 삼투해서는 가슴 저 밑바닥 켜켜이 시의 습곡을 쌓고, 거름으로 곱게 썩은 뒤에 비로소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킴으로써, 그저 시를 사랑하던 사람이 시를 창조하는 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음미할 수 있으며, 시인이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도록 꺼지지 않는 밑불이 되어준 이 시들을 통해 독자들 또한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시의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라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김용택 시인] 우리는 무엇이 이리 바쁜 것인가? 내 머릿속의 오늘은 왜 이리 복잡한가?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여기까지 밀려온 세월은 또 무엇인가? 언제 한번이라도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지나온 삶을 뒤적여본 적이 있었던가? 외로워서, 외로운 내가 외로운 나에게 눈물을 흘려주었던 일이 그 언제였던가. 허리 굽혀 신발끈을 매는 이 아침, 아, 나도, 살다가, 때로, 조용한 갈대가 되어 울어보고 싶은 것이다.
저자의 말 박용래의 시가 가슴에 오래 숨쉬고 있음에 나는 놀랐다. 서정주의 많은 시들은 나를 숨가쁘게 했다. 그의 시들은 나를 캄캄한 우물 속으로 끌어들였으며, 그의 언어는 징그럽도록 나를 휘감았다. 그의 시「상리과원」(上理果園) 은 내 귀를 웅웅거리게 했다. 김수영의 모든 시들은 완벽했다. 지금도 나는 김수영의 시들을 읽으면 가슴이 뛰곤 한다. 김수영, 그기 있어 한국 시단은 아직도 세상과 짱짱하게 대결한다.
김수영과 서정주 그리고 신동엽과 신경림, 이 네 시인은 지금도 문학적이고 사회적인 현실로 나를 압도한다. 그리고 조정권의 시「산정묘지」(山頂墓地) 는 인간정신의 숭고함과 시인정신의 엄연함을 보여준 시였다. 젊은 시인 유하와 송찬호의 시를 읽으며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송찬호의「임방울」은 그 얼마나 휘몰아쳐 오는가. 나는 혼자 소리내어 그 시의 한 구절을 중얼거리곤 했다.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이 구절에서 나는 굽이굽이 수천 년을 살아온 이 민족의 역사를 느낀다.
저자 소개 김용택 : 시인.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 농림고등학교를 나왔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시집 -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외 8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후 시집「맑은 날」(1986),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2), 「그 여자네 집」(1998), 「섬진강」(2000) 등을 냈고, 이 시편들로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1997), 「섬진강 이야기 12」(1999), 「인생」(2000) 등을 냈고, 영화 에세이「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2000)와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1998)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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